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청곡사 주변 이야기

가족과 함께 산림욕 하기 좋은, 월아산 등산 코스!!

청곡사 | 2018.06.24 14:01


청곡사의 주산은 해발
482m의 월아산(月牙山) 장군봉이다

 원래의 산 이름은 달빛이 산을 타고 올라왔다하여 달 올음산이라 하였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달음산 또는 달엄산이라 불렀

다가  후세에 한문식 표기로 달빛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의 월아산이라고 부른다  경상남도 진주시의 금산면 용아리에 위치

한다. 금산면 월아리·장사리와 진성면 동산리·가진리에 걸쳐 있다 월아산은 진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한국 인기 명산 176

에 올른 산이다,


 

월아산은 북쪽 국사봉과 남쪽 방향 장군봉이 젖가슴 처럼   두 봉우리 사이에 질매재가 있다. 질매재는 금산면에서 진성면

으로  넘나드는  고개인데, 형국이 소[] 짐 싣는 질매와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맑은 날에서는 일출과 일몰이 장관을 이룬 진주 8경 중 하나다.




이곳 향토 시인 강희은은  이 아름다운 장관을 이렇게 읊펐다.


"해가 뜨지 않고 / 굴러 내렸다 // 가랑이 같은 / 두 봉우리 사이 팬티 / 여린 풀잎 레이스에 닿을 듯 굴러내려 / 금호못 얼음

 바닥에  처박혀 / 혼이 나갔다 // 혼이 돌아오면서 / 진주검무 춤사위에 들어가 이글 이그르르 / 외줄로 돌다가 // 못둑에

나와 중천으로 곧 장 돌아갔다" (월아산 해 뜨기 )


'달옴산 달 오는 마을의/미색 여인/달 하나 안고 나라로/갔다//나라로 가서/월아산 청곡사에 은입사완 향로/일기(一器)//

고 간 달  대신으로/내려 보냈다'(강비)  .* 강비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가장 사랑하였던 신정황후을 칭함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월아산(月牙山)은 월아부곡(月牙部谷)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진양지"월아산은

 월아미리(月牙彌里)에 있다. 발산(鉢山)이 서쪽으로 달려와서 원통산(圓通山)이 되고, 원통산이 서북쪽으로 향하여 와서 이

산이 되었다. (중략) 산 위에는 기우단(祈雨壇)이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월아산 지명은 질매재 위로 떠오르는 달 모양을

보고 월아산이  달을 토해내는 듯하다고 하여 달엄산, 또는 달음산으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조선시대 국사봉에서 진주목사가 제주가 되어 기우제를 올렸다. 국사봉 아래 월아마을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이 의병을

 이끌고 진을 쳤던 곳이다. 국사봉 정상에는 무지개터가 있어 풍수학적으로 그곳에 묘를 드리면 재상이 난다고 한다.


월아산은 장군봉 등선을 사이를 두고 청곡사와 두방사 임야로 등재 되어 있다. 즉 조계종 사찰 임야로 옛날 왕실에서 하사받은

 듯 싶다. 원래 두방사는 청곡사 부속 암자였는데 2000년대에 독립하여 나갔다고 한다.

조계종 소속 사찰령은 사고 팔고 할 수ㄷ도 없고, 상속이 안되는 국유지나 다름이 없다. 






월아산 등산 코스는 장군봉까지 왕복 2시간에서 2시간 반 코스이며, 국사봉까지 3시간에서 3시간 반 코스라고 한다.



청곡사 주차장은 1일 이용료를 받는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일반 승용차는 1일 1000원, 대형은  3,000원. 평일은 무료 개방한다.

승용차 200여대는 정차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차장에서 좌측 길로 가면 청곡사 후문 주차장이 나오고, 우측 길로 가면 일주문이 나오는 등상로 입구이다. 




주차장 우측 화장실



주차장 우측 가운데에 1997년에 세워진 김덕령 장군의 전적비가 있다.

김덕령장군은  1567년 광주(光州) 충효동에서 출생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 의병장 고경명과 함께 의병을 이르켜  전라지역에서 왜적

과 싸웠다. 전북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 장군 전사 하자 의병장 곽재우 장군과 함께  왜적을 크게 무찌른다.


이후 경남 지역 사수를 위하여 이곳 진주 월아산에 목책성을 쌓고 방어선을 구축 하는데 왜구들은 그의 용맹이 두려워 접근을 못하였

다고 한다.  전란이 강화를 이유 삼아  장기전 들어가자 장군은 선조의 명을 받들어  이몽학 반란 진압에 나섰지만 진압에 소극적이였

다는 누명을 쓰고 역모에  연루되었다하여 한양에 압송, 선조의 친국 고문에 못이겨 옥사하게 되는데 이때 나이가 30세 였다고 한다.

 사후 누명이 벗겨지고 충장공 이란 칭호를 받는다.


장군이 죽은 후 슬픔에 곽재우 장군은 낙향하게 되고  왜구의 2차 침입으로 진주는 6만여명의 군관민이 몰살 당하는 수난을 당한다.

근대에 들어와서 광산김씨 후손들은 이곳에 전적비를 세우고 장군의 얼를 기리고 있다.



우측 일주문으로 올라길에 청곡사란 큰 입석이 자리 잡고 있다.  등산로 진입로다.




하산 후 먼지를 털 수 있는 콤프레샤와 벌레 기피 스프레이가 준비 되어 있다, 등산하기 전에 벌레 기피제를 뿌리고 올라가면

벌레와 모기들로 부터 보호 받을 수 있다...


솔소류지
소류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



 일주문



청곡사에 주석 하셨던 고승 부도탑



 등산로 입구













등산로가 그리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 아이들 손잡고 오는 님들이 많다.



정정상정정상

정상 중간 고개 마루에 체육장 쉼터 







산림이 우거져 산림욕 하기 딱 좋다. 군데 군데 제선충에 걸린 소나무 무덤들이 보인다. 






숲이 우거져 산림욕 하기 좋은 환경이다.


정상 못 미쳐 소정상 갈림길이 나온다. 9부 등성 정도, 이제 장군봉은 300m 지점 가파른 고개가 등장 한다.


비상시 사용하는  헬기장


평평


숨을 몰아 쉴 때 평탄한 길이 나오고  쉼터가 나오며 드디어 정상 보인다.






여기가 정상, 쉬엄쉬엄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정상에 전시된 사진들




우측으로 가면 질매재로 내려가 국사봉으로 넘어 갈수 있다.

정상에서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하는 등산객들이 꽤 있다.






정상에서 진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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