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귀의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부대중이 다함께하는 제12교구 해인사 말사. 진주 월아산 청곡사

청곡사 소식

아미타불 점안식 & 영구위폐 천도제 3

청곡사 | 2024.04.17 02:47
이번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서별전에는 세 분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비보사찰로서 청곡사를 개창 하신 도선 국사와 조선조를 개국하는데 큰 기여를 하신 태조 이성계 왕비인 신덕왕후, 세번째는 임진왜란 시절 월아산 정상에 목책성을 만들어 진주를 방어 하시다 모함으로 순절하신 충정공 김덕령 장군의 위폐를 모셨습니다. 
영정 근영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화사 김도래님 작품입니다.  




도선국사는 통일신라말기 승려로 풍수지리설의 개산조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고려 건국에 기여를 하였으며 
이곳 청곡사 자리가  풍수적으로 학이 알을 품은 명당인지라 지역과 국가에 위한 비보사찰로 터를 잡아 주셨다고  합니다. 
이번에 도선국사의 위패를 모셔 위업을 기리고 있습니다.  




신덕왕후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태조가 국가 대사를 논의 할 수 있는 지력을 갖춘 총명한 왕비입니다. 조선 건국 후  현비에 봉해져서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답니다. 
신덕왕후는 상산부원군 강윤성과 진산부부인 강씨 딸로, 부계는 곡산 강씨이고, 모계는 진주 강씨라고 합니다.
태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신의 소생인 이방석을 세자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으나 태종 이방원에 의해 폐서자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존호는 신덕왕후(神德王后)라 하고 능호를 정릉로 모시고 상총 스님를 시켜 부처님께 향을 피워 공양할 때 쓰는 향로를 제작, 이곳 청곡사에 모셔 신덕왕후의 명복을 빌고 왕생극락을 기원하게 합니다.

 이 향완은 이조실록에 기록에 남아있는 유물로  경위와 연대가 분명하고, 화려한 은입사 문양이 뛰어난 명품으로 명문
현재 원본은 국립 중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불교 신심이 강한 태조 이성계께서는 신덕왕후의 애절한 정을 잊지 못해 사후 정릉에 원찰을 세워 수시 내방, 왕후의 명복을 빌으시고  향안을 이곳 청곡사에 보내어 스님들로 하여금 극락왕생을 기원도록 하셨습니다.      

향안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대명 홍무 30년 정축(태조 6년, 1397) 조선국 개국조 성조의 중궁 신덕왕후의 본향인 진양대도호부 비보선찰 청곡사 보광전 향완을 공경히 만들었다.' 



김덕령 장군(1568~1596) 임진왜란 시기의 의병장이자 성리학자 입니다.

활과 칼를 잘쓰는  문무겸전의 인물로, 향교에서 성리학을 공부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 지방에서 그동안 모은 의병 3천여 명을 이끌고 출정하시여 전라지역에 혁혁한 전공을 남기 십니다.

 1593년(선조 26년)에 당시 전주에 내려와 있던 광해군으로부터 익호장의 군호를, 권율로부터 초승장의 군호를 받았고, 이듬해 1월 선조로부터 충용장(忠勇將)의 군호를 받습니다. 1594년(선조 27년) 4월에 28세(만26세)에 팔도 의병 총사령관이 된 분 입니다.

전라도 지역에 활약한던 김덕령 장군은 진주성을 사수 하던 김시민 장군이 무너지자, 이 곳 진주에 진출, 월아산 정상에 목책을 설치하고 왜적와 적과 대치하던 중, 역적모의 모함으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청곡사 주차장 입구에 장군의 혼를 기리기 위해 충혼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 청곡사에 아미타부처님과 영구위패를 모시게 된 동기는 주지 승찬스님의 원력으로 3년간의 작업 끝에 세워진 법당입니다.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들이 잘 된다는 전통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명당인 묫자리 찾아  조상을 안락하게 모시고 후손들에 발복을 기원합니다.  요즘은 화장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으며 조상의 명복을 기리는 제사 문화가 차츰 소멸해 가는 과정에서 위패를 모시고자 사찰을 찾는 불자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청곡사 이곳은 풍수적으로 진주의 3대 명당터 하나로  학이 알을 품은 발복하는 자리라 일찍이  도선 국사가 점지해 주신 길지입니다.  새들은 집을 짓을때 가장 안전한 곳을 택하여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바로 삼재가 없는 자리라 하여 선망 조상님들을 안락하게 모실 수 있고, 염원 기도가 잘 통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조선조 태조 이성계께서 그 많은 사찰 중에 청곡사를 택하여 신덕왕후의 위패를 이곳 청곡사에 모시된 동기도 태조 이성계의  왕사인 무학대사의 영향을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청곡사 대웅전 용마루 있는  청기와는 왕실 보호 사찰이란 징표 입니다.

청곡사에서는 매월 아미타재일을 맞이하여 법당에 모신 모든 선망 조상님들께서 아미타 부처님 위신력으로 극락왕생 하시도록 기원하고 후손들을 축원해 드리고 있습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