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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 문화 산책

부처와 함께 불화들 오시다/한겨레

청곡사 | 2018.06.20 09:08
동국대 일본 소장 희귀품 첫 공개
국립박물관 청곡사 국보 괘불·괘불함도 진귀
통도사 청룡사 보물 괘불탱 장관

고려·조선 불교미술 전시 봇물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그림, 세상 살아갈 걱정과 집안 우환을 덜어 주는 그림. 부처와 보살, 제자, 수호신 등이 등장하는 절간 불화는 바로 그런 그림이다. 겨레의 옛 불자들은 마음으로 빌던 부처의 따뜻한 자비와 은총을 눈 앞에 펼쳐놓는 거대한 불화를 반겼다. 평소에 볼 수 없던 고려, 조선시대의 불화 걸작들이 국공립과 사립 박물관 전시장에 한꺼번에 나왔다.


그 첫머리에 고려, 조선초의 그윽한 희귀 명품불화들이 있다. 동국대 박물관(관장 정우택)에서 전시중인 ‘건학 100돌 기념 국보전’에서 이들 명품을 보는 안복을 누릴 수 있다. 관음보살도, 마리지천도, 아미타팔대보살도, 지장삼존도 등 정 관장이 일본과 국내 수장가로부터 빌어온 귀중한 불화들이 2층 전시장을 채웠다. 일본에서도 공개된 적이 없는 최고 품격의 불화다. 1477년 그려진 <약사 12신장도>와 16세기 <금선묘아미타팔대보살도> 등의 조선 초 불화들은 전시의 고갱이격이다.


당대 최고의 화사들에 의해 화면 가득 세밀한 무늬와 선으로 메워진 궁중화풍의 불화들. “불교 회화사를 다시 써야할 만큼 중요한 자료들”이며 “앞으로 국내외 어디서도 두번 다시 볼 수 없을 전시”라는 정 관장의 귀띔이다.

1447년 성종의 누이동생 명숙공주가 발원한 <약사삼존십이신장도>는 섬세·우아한 인물 도상과 아련한 구름을 피워올리는 부처 위의 천개 장식 등이 아련한 공간감 속에 다가온다.


고려 불화의 매력은 단호할 만큼 명확한 구성과 색감이다. 일본 교토소장 <아미타팔대보살도>는 아미타여래가 여덟 보살을 거느린 모습을 담는다. 인물 특징이 한 눈에 들면서도 신비한 분위기가 투명한 옷자락과 현란한 무늬 사이로 풍긴다. 장식 세부는 다 쳐버리고 명쾌하게 부각된 보살들의 정연한 모습, 그들이 입은 옷자락은 금니로 정성껏 선을 입혔다. 거북이 무늬나 원문 등 옷에 그린 무늬 크기나 이미지를 조절해 색감을 바꾸는 놀라운 경지도 보인다.

달마의 모습을 닮은 <관음도>는 선불교의 비조 달마같은 용모에 굵은 먹선으로 툭하니 윤곽을 그어 선승 같은 관음이다. 14세기의 <지장삼존도>는 윤곽선을 그린 뒤 주위를 부옇게 하는 일종의 스푸마토 기법을 써서 보주를 안고 단정하게 앉은 지장보살의 단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몸장식을 전부 금니로 묘사한, 여덟개 팔을 지니고 선 밀교신 마리지천도의 모습 또한 찬탄을 금할 수 없다.


전시장에는 이밖에도 추사 김정희가 필사한 것으로 추정하는 관음경, 고려시대 회화사의 교과서와 같은 자료인 불교시집 ‘어제비장전’의 판화, 명대의 연호(홍치 2년)가 새겨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송죽문호 등 다른 명품들도 가득하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 미술실의 큰 벽을 차지하고 들어선 국보 302호 진주 청곡사 괘불전(10월22일까지)은 소박하면서 끈끈한 조선후기 승려들과 대중 불자들의 염원을 반영한다. 이 괘불은 길이 10m, 폭 6.3m에 이르는 대형 불화다. 조선 후기 불화의 대가 의겸 등 열명의 화승이 함께 그린 걸작 걸개그림이다.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는 6m 넘는 석가모니불상의 위엄있는 자태 옆에 부드럽고 인자한 표정의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서고 그 뒤로 여러 보살과 제자들이 함께 따른다. 화려한 하늘 옷을 입은 이들의 거대한 모습은 가까이 가서 보면 온갖 꽃무늬, 원형 무늬 등 예쁜 무늬들이 채워져 그 자체로 화엄의 꽃밭 속에 잠긴 기분을 느끼게 된다.


무게 114kg이나 되는 이 괘불을 넣었던 길쭉한 괘불함은 거북이 자물쇠, 용머리 손잡이, 연꽃 동자들이 돋을새김된 앞바탕 등 장식이 구경거리다. 국보 78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 83호와 교체 전시중인 3층 불상실도 꼭 들러봐야 한다.


괘불의 매력에 맛들인 이들에게 또하나의 가품이 기다린다.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 현관에서 10월 29일까지 장기 전시중인 17세기의 경기 안성 청룡사 괘불탱(보물 1257호)이다. 세로 9.18m, 가로 6.5m의 이 괘불은 1658년 그린 조선 중기의 괘불 대표작으로 석가모니와 6대 보살, 10대 제자, 법을 청하는 사리불 등의 모습이 다채롭다. 석가모니의 몸 주위로 오색 광선이 뻗쳐나가고, 적녹색 화면에 꽃비가 내리는 듯한 옷과 바닥 꽃무늬, 인물 사이를 누비는 상서로운 구름 등이 아찔하다. 불화들의 잔치는 단연 올 5월 미술동네 감상의 최고 화두인 듯 하다.


노형석 기자 / 200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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