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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이해

청곡사 | 2018.06.22 11:52
불사
1)사찰의 이해
정사(精舍), 가람(伽藍), 사원(寺院), 사찰(寺刹), 절, 절간, 산사(山寺)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우는 사찰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佛像)이나 불화(佛畵) 등을 모신 곳이다. 더불어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설법을 듣는 곳이다.
이러한 의미의 장소를 여러 단어로 불리는 까닭은 바로 불교가 인도에서 건너오면서 중국을 거쳐 한자로 음역되고 다시 우리나라로 받아들여지면서 단어가 상황에 맞게 변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불리우는 이름만 달라질 뿐 사찰이 갖고 있는 본연의 기능과 의미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찰이 어떤 곳인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나열한 단어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만큼 단어 자체에 깃든 사연과 의미가 깊다.
정사(精舍)라는 말은 인도에서 사찰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인도에 있어서 최초의 사찰은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부처님이 녹야원(鹿野院)에서의 최초의 설법 후에 마갈타국의 수도인 왕사성을 향하여 떠나게 되었다. 그 당시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이 부인 위제휘와 함께 왕사성 북쪽의 가란타 장자의 소유인 죽림(竹林)을 희사받아 그곳에 집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게 되었다. 이것이 불교의 역사상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인 것이다.
 
 
또한 범어 상가라마(samgharama)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한자로 음역하면서 승가람마(僧伽藍摩), 가람(伽藍)이라 불리우게 되면서 가람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중원(衆園)이라고 의역되기도 하는데, 이 모두를 총칭하여 정사(精舍)라고 번역한다. 중원이라는 말은 불교를 신봉하고 수행하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정사나 상가라마가 상가(僧伽)의 거주처이지만, 정사는 주로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계신 곳을 말하고, 상가라마는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그의 제자들만이 거처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 즉 정리하자면 우리가 말하는 사찰을 인도에서는 정사나 가람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사원(寺院)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인도에서 정사나 가람(상가라마)이라고 불리던 것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사(寺)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자(漢字)의 사(寺)는 공공기관의 뜻이 있어서, 중국에서는 사찰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이전에 관아에 붙여 쓰던 말이었다. 유래를 살펴보면 후한명제(後漢明帝) 연평(永平) 10년(67)에 인도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라는 두 스님이 흰말에다 장경(藏經)을 싣고 후한의 서울인 낙양(洛陽)에 왔을 때, 후한에서는 두 스님이 외국인이므로 관례에 의해 외국인을 위한 외무부 소속 관아(官衙)인 홍려사(鴻廬寺)에 머물도록 했다. 그러나 그 후 두 스님이 계실 마땅한 곳이 없어 그대로 그곳에 머물도록 하면서 홍려사라는 이름을 두 스님이 타고 오신 흰말을 기념하여 백마사(白馬寺)라고 고쳐부르게 되었다. 이것이 중국에 있어서 사찰의 효시이다. 그 뒤로 중국에서는 불도를 수행하는 승가(僧伽)들의 거처를 사(寺)로 부르게 되었다. 이 사라는 말과 더불어 원(院)이라는 말은 원래 주위에 둘러친 담을 말하는데 이것이 변하여 주원(周垣), 회랑(回廊)이 있는 건물을 의미했으며, 관사의 이름에도 쓰였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에 칙명에 의하여 대자은사(大慈恩寺) 등에 번경원(번經院)을 세웠는데 이것이 불교와 관련된 건물에 원(院)이라는 이름을 붙인 효시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찰은 범어로 비하라(vihara)라고 하고 비하라(毘訶羅)라고 음역하며, 수행을 하는 도량이라는 뜻으로 주처(住處), 유행처(遊行處) 등으로 번역한다. 사찰이란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다음의 설이 가장 유력하다. 고구려의 최초의 사찰인 성문사(省門寺, 또는 肖門寺), 이불란사(伊弗蘭寺)와 더불어 신라에서도 제19대 눌지왕 때에 묵호자(墨胡子)가 일선군(一善郡)의 모례의 집에 와 머물면서 몰래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였다고 한다. 모례는 원래 국어의 ‘털례’를 한자로 음사한 것으로 ‘털례’의 집에 불상이 모셔져 있고, 불교인들이 모여서 믿음을 행할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털례의 집은 가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부처님을 모시고 불교를 행할 수 있는 집을 ‘털례’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 ‘털례’가 사찰로 변한 것이다.
 
 
절은 사찰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로, 그 연원에 대해서도 많은 설이 있지만, 위의 텔례를 간단하게 부른 것이 절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절간은 절과 건물을 뜻하는 한자 간자가 합해져서 불리우는 단어이다.
 
 
이처럼 사찰은 많은 단어로 불리우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부처님과 스님, 불자들의 도량이란 뜻이다. 부처님을 상(象)이나 그림으로 모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승려들이 수행정진하며, 불자들이 더불어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수행처란 의미가 가장 본연의 의미인 것이다.
 
 
2)사찰의 구조
사찰은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佛像)이나 불화(佛畵) 등을 모신 곳이다. 더불어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아가 수행을 하고 설법을 듣는 곳이다. 이러한 다기능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각 기능에 따른 여러 시설물이 함께 어우러진 종합적인 건축공간을 형성한다. 여기서 공간 배치 문제가 발생하는데, 단순히 건축적인 면에서만 배치가 문제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 더 큰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각 기능과 위격이 다른 건조물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인가 하는 점에 그것이다. 그리하여
평면적인 배치 계획이 고안되었는데, 이를 가람배치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가람배치의 대표적인 형식는 탑원(塔院), 금당원(金堂院), 승원(僧院)의 복합배치 형식이다. 이처럼 탑을 모신 곳과 불상을 모신 곳, 그리고 스님이 거주하는 곳으로 나누어 구분하기도 하고, 탑과 금당의 배치형식에 따라 다르게 구분하기도 한다. 1탑 1금당, 2탑 1금당, 1탑 3금당의 형식이 대표적이다. 또, 탑이 없는 예배원과 승원의 복합 배치 형식도 있는데 이것은 드문 편이나 조선시대의 가람배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전각(殿閣)과 종루(鐘樓), 고루(高樓), 경루를 포함한 수많은 부속건물과 천왕문, 일주문 등이 어우러져 매우 다양한 배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구조로 이루어진 사찰을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는 문들이 있다. 바로 일주문, 불이문, 천왕문, 금강문 등이다. 일주문(一株門)에서 시작하는 사찰의 경계를 통해 우리가 세속의 때를 벗고 부처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문이다. 산문(山門)이라고도 하는데, 산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 절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게 된다. 다음의 불이문(不二門)은 불이(不二)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절대 차별없는 이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승속(僧俗)이 둘이 아니요,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며, 중생계와 열반계 역시 둘이 아니니, 일체중생이 개유불성(皆有佛性)하여 이 문을 들어서면서 부처님의 이치를 깨우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문을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한다. 천왕문(天王門)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다. 금강문(金剛門)은 사찰에 따라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가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왼쪽에는 입을 다문, 오른쪽에는 입을 벌린 두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는 문이다.
 
 
이러한 문들을 통과하면, 앞서 이야기한 법당들이 위치한다. 이러한 법당들에는 불상이나 불화를 모시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전각(殿閣)이라고 한다. 즉 ‘OO殿’, ‘OO閣’이라고 하는 건물들이 모여서 사찰을 이루게 되는데, 흔히 전(殿)은 각(閣)보다 계위가 높은 건물을 가리킨다. 이처럼 사찰의 구조물들에는 각각 나름의 의미가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신 전각은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전(大雄殿), 팔상전(八相殿), 영산전(靈山殿), 나한전(羅漢殿), 응진전(應眞殿)이라고 하며, 비로자나부처님이나 삼신불·삼세불을 모신 전각은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전(毘盧殿), 화엄전(華嚴殿)이라고 한다. 아미타부처님을 보신 전각은 극락전(極樂殿), 무량수전(無量壽殿), 미타전(彌陀殿)이라고 하며,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은 약사전(藥師殿)이라고 한다. 다음 보살(菩薩)을 모신 전각으로는 관음보살을 모신 관음전(觀音殿), 원통전(圓通殿)이 있고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冥府殿), 지장전(地藏殿) 등이 있다. 각(閣)으로는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獨聖閣), 치성광여래를 모신 경우는 북극전(北極殿)이라고 하나 후기로 갈수록 칠성신에 대한 민간신앙이 강해지면서 칠성신을 모신 칠성각(七星閣), 산신이나 가람신을 모신 산신각(山神閣), 가람각(伽藍閣) 등과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 화상을 모신 삼성각(三聖閣), 스님들의 영정을 모신 영각(影閣)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경전을 모신 장경각(藏經閣), 판전(版殿) 등이 있기도 한다.
 
 
이와 같은 법당이나 금당의 의미인 전각 말고도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거주처가 있게 된다. 수행처로는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이 존재하고 거주처로는 우리가 흔히 요사라고 하는 노전(爐殿), 향로전(香爐殿) 등이 있다.
 
 
불구

사찰의 전각 안, 그리고 경내에는 여러 의식을 위하거나 공양을 위한 불구들이 있다. 흔히들 이것을 불교공예의 일종으로 간주하고 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하는데, 본연의 의미는 의식과 공양을 위한 불구(佛具)라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구 혹은 공양구라고 지칭한다.
 
 
먼저 의식구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불전사물(佛殿四物)로 묶어 지칭되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이다. 범종(梵鐘)은 본래는 대중에게 시간을 알리는 도구로 사용하여 왔으나 예불시에 범종을 치면서 모든 지옥중생이 이 종소리를 듣고 깨우침을 얻도록 원하게 된 것이다. 범이란 바로 우주만물이며 진리이고 맑고 깨끗함이며 한 없이 넓고 크고 좋다는 뜻이다. 종송(鐘誦)을 하는 이유는 미몽에 빠진 중생의 깊은 잠을 깨워주며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극락세계의 장엄을 일러주고 귀의 발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법고(法鼓)는 불법을 북에 비유하여 법을 설하는 것을 북을 울린다고 한다. 이 말은 부처님의 교법이 널리 세간에 전하는 것을 북소리가 널리 퍼지는데 비유한 것이며 교법이 중생의 번뇌를 없애는 것이 마치 진치고 있던 군대들이 전진하라는 북소리가 울리면 적군을 무찌르는데 비유한 것이다. 또 북을 치는 뜻은 축생들의 영혼을 위하여 법고를 친다고 한다.
 
 
목어(木漁)는 나무를 깎아서 물고기 생긴 모양을 새겨 그 속이 비게 만들어서 송경할 때와 그 밖의 불사(佛事)에 치는 것이다. 운판(雲板)은 선종에서 제당이나 부엌에 달고 대중에게 공양시간을 알리던 기구이다. 청동으로 구름모양으로 주조하며 운판이라고 이름한다. 또 운판을 치는 뜻은 공중에 있는 고혼과 날아다니는 조류계의 중생의 이고득락과 해탈을 위하여 친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의식구 말고도 비슷한 기능으로 쳐서 시간을 알리고자 대중을 모으는 기능으로 사용되는 금고(金鼓), 반자 등도 있으며, 금강령(金剛鈴)과 같은 요령, 목탁, 죽비, 바라, 징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의식에 부처님을 모셔오기 위한 ‘연’인 가마도 의식구에 포함되며, 부처님의 명호를 적어놓는 불패(佛牌) 등도 의식구에 속한다.
 
 
공양구로는 초를 피우는 촛대, 향을 피우는 향로(香爐)나 깨끗한 물을 공양하기 위한 정병(靜甁) 등이 있다. 특히 고려시대의 은입사향로나 청동이나 청자로 만들어진 정병은 당시 공예수준을 유감없이 발휘해 만들어진 것이다.
(조계종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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